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압둘라 아마드 바다위 (문단 편집) == 총리 == 내각책임제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총리는 [[한국]]의 대통령에 해당되지만, 정작 이 사람은 [[최규하]]처럼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최규하하고 비교할 대상은 아니다. 지금까지 말레이시아의 총리들 상당수가 독재를 감행했으나, 이 사람은 독재자라고 보기는 힘들다. 취임하자마자 부패 척결을 내세운 압둘라는 마하티르 시기 부패에 연루된 수많은 정치 스타들에게 대규모로 [[코렁탕]]을 먹인다. 사실 말레이시아의 부정부패가 은근 심해서인지, 주민들 사이에서 정부의 부정부패가 너무나도 유명한 건 사실이다. 이 덕에 주민들의 불만을 일차적으로 돌렸으며, 종교 부문에서는 [[이슬람 하다리]] 사상을 제창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고르바초프]]나 [[김영삼]]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이 사람도 역대 총리들과 마찬가지로 개인숭배를 시도했는데, 스스로를 "인적자원개발의 아버지(Bapa Pembangunan Modal Insan)"라고 칭했다. 그리고 그를 "팍 라"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일이 일어나자 공식 석상에서 이 별명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역대 모든 말레이시아 총리들이 스스로를 별명으로 부르지 못하게 하긴 했다. 왜냐하면 개인숭배에 어긋나니깐(...).] 물론 전임들보다 덜하기는 했지만. 말레이시아에 대대적인 무상의무교육을 도입했는데, 초등학교와 중학교(하급)[* '하급'과 '상급'으로 구분하지만, 한국으로 치면 하급은 그냥 중학교에 해당되고, 상급은 고등학교에 해당된다. 말레이시아는 고등학교가 없다.]의 무상의무교육을 도입했으며, 이 덕분에 돈이 없어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던 가난한 아이들도 학교를 무사히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는게, 이 정책은 사실상 [[말레이인]] 특권층에게만 주어졌으며, 인종차별적이라고 비판을 받는다. 뭐, 이 사람이 그렇다고 전통적인 인종차별 정책인 [[부미푸트라 정책]]을 폐기하거나 한 건 아니다. 또한 외국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폐쇄적으로 돌린 것에 대한 비판은 존재한다. 2005년에는 외국인 투자를 제한하는 해괴망측한 법안이 통과되었고, 이 무렵을 전후로 외국인들은 말레이시아에서 사실상 살기 힘들어졌다. 물론 이러한 정부의 [[제노포비아]]적 정책은 사실상 압둘 라작 시절부터 있었으나, 후에 차츰 강화된 것인데, 이 사람은 이를 폐기하기 보다는 더 강화했으니 무슨 소리가 나올까. 후에 [[나집 라작]]이 집권하면서 좀 풀리는 듯 했지만, 나집은 되려 더 빡세게 돌리면서, 외국인들의 불만은 저만이 아니다. 그리고 툰쿠 압둘 라만을 오마주하는 행동을 했는데, 2007년 8월 31일 독립 50주년을 맞아 [[쿠알라룸푸르]]의 [[독립광장]]에서 툰쿠가 했던 "독립!"을 연달아 외쳤다. 이것은 애국심을 강조하기 보다는 툰쿠를 오마주해서 노년층의 향수를 끌려 한 게 아닌가 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다소 개혁개방을 약속했으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주민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으며, 총선이 있던 2008년은 더더욱이나 안와르의 집행유예가 풀리는 해라 민주화를 이행하라는 국민들의 압박을 지속적으로 받았다. 결국 동년 총선에서 UMNO는 사상 최초로 개헌선에서 한참 밀리는 대대적인 참패를 당했다. 뭐, 그래도 여전히 1당독재를 하는 데 법적인 하자는 없으니 본인은 더 해먹으려고 작정했던 모양이지만, 마하티르를 비롯한 여권 내 실세들의 사퇴 압력이 이어지자, 이듬해 사임하였고 부총리인 나집 라작이 승계했다. 현재는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한 모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